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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아스와 로마 건국 신화에 담긴 역사적 정체성과 신화의 융합

by smilelife4u 2025. 6. 5.

로마 건국 초기의 에네아스와 병사들
로마 건국의 아머지 에너아스

 

에네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패잔병이자, 로마 건국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단순 조연에 불과했던 그는 이후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 중심인물로 격상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통해 그는 신의 선택을 받은 자로,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품고 고난의 여정을 떠난다. 본 글에서는 에네아스의 여정과 신화가 로마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트로이의 몰락에서 로마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신화의 다리

고대 로마의 건국 신화는 단순한 설화나 전설이 아니다. 그것은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정당화하고, 제국의 위상을 신성한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문화적 장치였다. 이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에네아스다.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 왕족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부활하며, 트로이의 패망 후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한 '신의 사자'로 거듭난다.

트로이 함락 당시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데리고 탈출하는 그의 모습은 단지 생존자의 모습을 넘어, 문명의 불씨를 잇는 사명의 상징이 된다. 로마는 그 출발을 트로이에서 찾으며, 그리스 세계와의 문화적 연속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에네아스는 이러한 연결 고리의 핵심으로 기능하며, 로마 건국의 정당성과 영광을 정초 하는 데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라, 신들이 정해준 운명을 실현하는 여정이며, 이 과정에서 로마는 단지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신의 의지로 탄생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신화는 로마인들에게 역사적 자부심은 물론, 정치적 정당성까지 부여해 주는 강력한 서사적 도구였다.

신의 뜻과 인간 의지 사이, 에네아스의 운명적 여정

『아이네이스』의 핵심은 "운명"이다. 에네아스는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을 넘어, 신들의 뜻을 수행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이는 특히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잘 드러난다. 디도와 사랑에 빠진 에네아스는 잠시 카르타고에 머물며 평화를 누리지만, 신 헤르메스의 명령을 받고 결국 그녀를 떠나게 된다. 디도의 자살은 이 장면의 비극성을 더하며, 에네아스의 여정이 개인적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뤄져야 하는 고통스러운 운명임을 상징한다.

이는 그가 단순한 영웅이 아닌, 공동체와 문명을 위한 희생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정 중 그는 수많은 자연의 위협, 적대적인 종족, 내부의 갈등을 극복한다. 특히 이탈리아 도착 이후 라티움 지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그의 여정이 단순한 정착이 아닌, 피로써 이루어지는 개척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에네아스는 무력만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신탁을 따르고, 제물과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며, 이를 통해 로마인들에게 ‘경건함(pietas)’이라는 핵심 덕목을 전수한다.

그의 리더십은 당시 로마가 요구했던 이상적인 지도자의 전형을 반영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신과 인간, 전쟁과 평화, 욕망과 사명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인물로서, 로마의 시조로 칭송받는다.

에네아스 신화가 오늘날에 남긴 유산

에네아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대 로마의 건국 신화를 넘어서, 이후 수천 년간 서양 문명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는 단순한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이상적인 국가 지도자의 모델이자 개인의 고통을 감내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선택한 인물로 그려진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를 통해 로마 제국의 기원을 신성화하였고,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오늘날에도 이 신화는 문학, 철학, 정치 담론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에네아스의 여정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상징으로 작용하며, 전쟁과 이주의 서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로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에네아스의 이야기는 여전히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국, 그의 여정은 고대인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